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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라틴 아메리카의 '아방가르드(Avant-Garde)'

by $#%%#$ 2024. 2. 16.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역사와 세계

개요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 세계적 위기상황은 예술계에도 파장을 끼쳤습니다. 근대성에 대한 환멸이 새로운 예술 경향을 낳았는데, 바로 '아방가르드' 혹은 '전위예술(前衛藝術)'입니다. 이 운동은 회화, 음악, 문학 분야에서 다양한 예술 운동으로 나타났고,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탄생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에도 전파되었고, 많은 중남미 시인들이 직접 유럽을 왕래하며 독자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칠레의 비센떼 우이도브로(Vicente Huidobro)의 창조주의(creacionismo),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울트라이즘(ultraísmo),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루이스 요렌스 또레스(Luis Lloréns Torres)의 빵깔리스모(pancalismo), 도미니카의 도밍고 모레노 히메네스(Domingo Moreno Jiménez)의 뽀스뚜미스모(postumismo), 콜롬비아의 레온 데 그레이프(León de Greiff)가 주도한 '로스 누에보스(Los Nuevos)' 그룹, 쿠바 시인인 마리아노 브룰(Mariano Brull)의 순수시, 페루의 알베르또 이달고(Alberto Hidalgo)의 단순주의(simplismo), 멕시코 시인 마누엘 마쁠레스 아르쎄(Manuel Maples Arce)의 에스뜨리 덴띠스모(estridentismo)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시인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아방가르드를 해석하고 적용했으며, 그 결과 각자의 작품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해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주요 인물들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비센떼 우이도브로는 창조주의를 주창하였고, 그의 대표작은 1931년에 쓰인 『알따소르(Altazor)』입니다. 창조주의는 자유로운 형식의 측면에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언어의 일관성을 무시한다는 면에서는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는 20세기 중남미 시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간주되며, 그의 대표작 『뜨릴세(Trilce)』는 전통과 결별한 아방가르드 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작품활동은 시를 통해 시작하였고, 그의 초기 작품 중에는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입니다.

빠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대찬가(Canto General)』는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대서사시입니다.

끝으로, 호세 후안 따불라다(José Juan Tablada)는 일본의 시형식인 하이쿠를 중남미 문학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특징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는 유럽의 아방가르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적 배경과 유럽에서 받은 영향, 그리고 그들 자신의 창조력이 결합된 결과로,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는 고유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는 전통적인 형식을 거부하고,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 부합하는 새로운 감각을 옹호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시적 언어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를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들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는 각자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중남미에서는 아프리카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결합된 결과, '검은 시(poesía negra)'라는 독특한 형태의 시가 나타났습니다.

맺음말

라틴 아메리카 아방가르드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유럽에서 받은 영향, 그리고 그들 자신의 창조력이 결합된 결과로,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외교관이자 현대 '멕시코 시'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호세 후안 따블라다( José Juan Tablada)